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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각에서 길상사로: 요정의 아름다운 변신과 그 역사

by pabal2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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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각은 한때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장소는 놀라운 변화를 겪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길상사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원각의 역사와 길상사로의 변모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성북동 길상사의 사진
@길상사 홈페이지

 

대원각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은 당시 정치인들의 밀실 정치에 이용되던 장소였습니다. 이 고급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金永漢, 1916~1999) 여사의 인생 역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김영한 여사는 16세에 조선권번(朝鮮券番)에 들어가 '진향(眞香)'이라는 기생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근대시의 대표적 시인 백석(白石, 1912~1995)의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고, 김영한 여사는 후에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책을 저술하며 그들의 사랑을 기록했습니다.

 

 

대원각에서 길상사로의 변화는 김영한 여사의 깊은 영적 전환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법정 스님의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당시 시가 1000억 원에 달했던 7000여 평의 땅과 건물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양하던 법정 스님을 10년에 걸쳐 설득한 끝에 1997년 12월 14일, 마침내 길상사(吉祥寺)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길상사의 개원식에서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단 두 마디의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길상사의 구조는 여전히 과거 대원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길상사의 일주문(一柱門)은 마치 궁궐의 입구와 같은 2층 팔작지붕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대원각의 정문을 그대로 활용한 결과입니다. 또한, 과거 연회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은 현재 설법전(說法殿)으로 변모하여 대형 법회나 교육, 강의, 신도 모임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길상사의 중심에는 극락전(極樂殿)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극락전의 주불(主佛)은 아미타불로, 이는 서방정토(西方淨土)인 극락세계에 머물며 불법(佛法)을 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입니다. 이는 살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인이 아미타불의 힘을 빌어 모든 한(恨)을 내려놓고 서방정토에 이르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길상사에는 김영한 여사를 기리는 공덕비(功德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녀는 1999년 11월 14일에 타계했는데, 하루 전날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한 후 길상헌(吉祥軒)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은 눈 오는 날 길상헌 뒤쪽 언덕에 뿌려졌고, 그 후 공덕비가 세워졌습니다.

법정 스님은 김영한 여사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길상사의 회주(會主)직을 맡았습니다. '무소유'를 비롯해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 피네' 등 20여 권의 대중서를 통해 깊은 울림을 남긴 법정 스님은 평생 동안 그 흔한 사찰 주지직 한 번 맡지 않으며 '무소유'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지만, 길상사만큼은 예외로 두었습니다.

 

 

오늘날 길상사는 과거의 화려했던 요정의 모습을 벗어나 평화로운 수행과 명상의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침묵의 집'이라 불리는 명상 센터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명상을 할 수 있으며, 범종각에서는 김영한 여사의 소원대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또한, 시인 백석을 기리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어 문학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대원각에서 길상사로의 변화는 단순한 장소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여인의 인생 여정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며, 속세에서 불교적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영적 전환의 상징입니다. 이 장소는 우리에게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능력,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화를 찾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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